
D가 말을 잘하는 법을 물었다. 나는 무슨 말인가 싶었다.
D와는 늘 대화가 잘됐다. 상대의 말을 귀담아듣고, 적절한 순간에 반응할 줄 아는 친구였다. 무언가를 신나게 이야기하다 보면 듣는 사람이 지루하지 않을까 신경 쓰일 때가 있는데, D와 있을 때는 그런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 말을 잘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취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D의 옆자리에는 마흔대 상사가 있었다. 내성적인 사람이지만 먼저 말을 걸어오곤 한다고 했다. 신입을 챙겨주려는 것 같아서 D도 대화를 받아주고는 있는데, 이야기가 좀처럼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상대가 말을 하고 싶어 한다는 건 알겠는데, 자신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너라면 별문제 없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다가 지난 날의 대화를 떠올렸다. 대체로 내가 말하고 D가 들었다. 나는 경험을 꺼내거나 생각을 풀어놓았고, D는 그 이야기를 받아줬다. 내가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는 기억을 가지고 D도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이야기를 꺼내고 끌고 가는 능력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반응하는 능력은 다르다. 둘 다 대화에 필요한 능력이지만, 두 능력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D는 듣는 쪽에 강점이 있었다.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도 고마운 일인데, D는 말하는 사람이 즐겁도록 반응할 줄도 알았다. 나와의 대화에서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D와 상사는 어쩌면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둘 다 이야기를 이끄는 일이 익숙하지 않은데 한 사람은 신입을 챙기려고 말을 걸고, 다른 사람은 그 마음이 고마워서 대화를 이어가려 애쓰는 상황.
나는 D에게 잘하는 것을 써보라고 했다.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내려 애쓰기보다 상대의 말이 도움이 됐다면 도움이 됐다고, 고마우면 고맙다고 표현해보라는 뜻이었다.
“도움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정도의 말이면 된다. 아부를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실제로 도움을 받았을 때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하는 것이다. 듣는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말하는 쪽에서는 자신이 괜한 이야기를 하는지, 불편하게 만드는지 알기 어렵다. 나이 차이가 큰 신입에게 먼저 말을 거는 상사라면 그런 데 신경이 쓰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속마음까지는 몰라도, D가 고맙다고 말해주면 적어도 방금 건넨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D는 이 말에도 조금 부담을 느끼는 듯했다.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친구에게 자연스럽게 하던 반응이 스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상사 앞에서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애초에 말을 잘하는 방법을 물었는데 나는 반응을 잘해보라고 하고 있으니, 원했던 답과 달랐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회사에 다니면서 괜찮다고 느꼈던 방법들을 더 이야기했다. 자기 뜻을 간결하게 전하는 편이 좋았다. 감사한 일에는 감사를 표현하고, 하기 어려운 일은 어렵다고 말하는 식이었다. 상대를 배려한다고 해서 거절할 말까지 흐릴 필요는 없었다.
대화할 때는 상대에게도 얻는 것이 있으면 좋다고 생각했다. 재미가 있거나, 도움이 되거나, 조금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거나. 대화를 나눌 때마다 쓸모를 따질 수는 없겠지만, 상대에게도 하던 일이 있고 그날의 기분이 있다. 내가 말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붙들어두면 부담이 될 때도 있었다.
그러다 자신의 캐릭터가 분명하면 회사 생활이 편해진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나는 회사에서 미친 과학자 같은 사람으로 지냈다. 특이하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 덕에 관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회식에 빠져도 됐고, 혼자 밥을 먹어도 괜찮았다. 연차를 쓸 때도 눈치가 덜 보였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쟤는 원래 저래” 하고 받아들여줬다. 나를 특이하게 보기는 해도 싫어하지는 않았다.
대신 일에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달려들었고 성과도 냈다. 내가 누린 편안함에는 그 조건이 붙어 있었다.
내게는 그런 생활이 잘 맞았다. 사람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니 매번 눈치를 보거나 설명할 필요가 줄었다. 그래서 D에게도 자기 캐릭터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D의 성향을 봤을 때 나는 ‘대가리 꽃밭’ 쪽을 추천했다.
이런저런 방법을 이야기한 끝에는, 회사에서 말을 좀 못해도 된다고 했다.
말을 잘하고 싶으면 노력해볼 수 있다. 잘하는 사람을 보고 배우고, 서툴더라도 이야기를 꺼내볼 수 있다. 하지만 방법을 알았다고 해서 곧바로 능숙해지지는 않는다. 오래 걸릴 수도 있고, 해보니 말에는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을 수도 있다. 그때마다 자신에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받아들여도 된다. 필요한 말을 하면서도 잡담에는 말수가 적은 사람으로 지낼 수 있다. 업무에 필요한 내용을 글로 정리해 전할 수도 있으니, 이야기를 유창하게 끌어가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모든 일이 막히는 것도 아니다. 말이 끊길 때마다 내가 다음 말을 찾아야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D는 이미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준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사람이 무안하지 않게 반응할 줄도 안다. 그 능력을 두고 없는 능력부터 갖추려고 하면 대화가 더 힘들어질 것 같았다. D도 상사도 이야기를 이끄는 데 서툴다면 조금 어색한 채로 지내도 괜찮지 않을까. 도움을 받으면 고맙다고 말하고, 할 말이 없을 때는 잠시 각자의 일을 하면서.
나는 D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D는 이번에도 듣는 쪽이었다. 말을 잘하고 싶다는 바람에 당장 꺼내 쓸 만한 방법을 얼마나 줬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잘하지 못하는 일 때문에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지는 않았으면 했다. 이야기를 더 잘하게 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면, 그동안은 지금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도 된다. 다음 날 출근할 때까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