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카오톡이 깨뜨린 오래된 약속
카카오톡이 편리한 서비스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요금을 신경 쓰던 시절에 무료로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고, 이후에는 선물을 보내고 돈을 주고받고 본인인증을 하는 일까지 간편하게 바꿨다.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온라인에 일상을 올리기 시작한 사람들도 있었다. 카카오는 사람들이 이미 하던 일을 조금씩 편하게 만들며 생활 안으로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사업이 늘어나는 것 자체가 불편하지는 않았다. 카카오스토리가 싫으면 쓰지 않아도 됐고, 선물하기가 필요하지 않으면 누르지 않으면 됐다. 카카오페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친구와 대화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내게 카카오톡은 메신저였고, 다른 서비스들은 필요할 때 찾아가는 곳이었다.
나는 그 구분을 카카오와 사용자 사이의 오래된 약속처럼 받아들였다. 회사가 명시적으로 보장한 계약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카카오톡을 계속 사용하며 기대하게 된 방식이었다. 연락하러 들어온 사람은 연락하고 나갈 수 있고, 다른 것이 필요한 사람은 스스로 찾아간다.
2025년 9월의 대규모 개편은 그 기대와 다른 방향을 보여줬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을 ‘목적형 메신저’에서 ‘탐색형 서비스’로 바꾸겠다고 밝혔고, 친구탭에 피드를 도입하는 한편 세 번째 탭인 지금탭에 숏폼과 오픈채팅을 배치했다. 메시지를 보내러 들어오는 앱을, 들어온 김에 새로운 콘텐츠를 발견하는 앱으로 확장하겠다는 뜻이었다. 카카오 개편 발표
친구탭의 첫 화면은 이후 같은 해 12월 목록형으로 돌아왔다. 따라서 개편 당시의 화면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다만 그 개편에서 드러난 방향은 여전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연락하기 위해 확보한 이용자의 방문을 콘텐츠 소비로 이어가려 할 때, 어디까지를 사용자의 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친구탭 복원 보도
선택하는 기능에서 피해야 하는 노출로
내가 카카오톡을 켜는 이유는 대부분 대화다. 다른 기능이 아무리 많아져도 이 순서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반면 회사에는 콘텐츠와 광고, 커머스와 채널도 중요한 사업이다. 사용자가 필요한 말을 주고받고 곧바로 나가는 것보다, 앱 안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이용하는 편이 사업 기회를 늘릴 수 있다.
두 목적이 어긋나는 지점은 기능의 개수보다 배치에 있다. 선물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찾아갈 수 있도록 메뉴를 두는 것과, 다른 일을 하러 온 사람의 화면에 상품을 먼저 보여주는 것은 다르다. 숏폼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 입구를 제공하는 일과, 기존 기능을 찾는 동선에서 숏폼을 마주치게 하는 일도 구분해야 한다.
나는 이런 변화를 볼 때 쇼핑몰을 지나야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역사를 떠올린다. 화장품 가게와 식당, 팝업스토어와 광고판 사이로 승강장에 가는 길이 나 있다. 누군가에게는 편리한 공간이겠지만, 열차를 타러 온 사람에게는 지나쳐야 할 것들이 늘어난 셈이다. 시설이 좋아졌다는 설명만으로 동선이 불편해졌다는 경험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선택지는 존재 여부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무엇이 먼저 보이는지, 어떤 화면이 기본으로 열리는지, 원하지 않는 것을 피하려면 얼마나 더 움직여야 하는지도 선택의 일부다. 같은 기능이라도 이용자가 찾아가도록 놓을 때와 이용자를 먼저 마주치도록 놓을 때는 다르게 작동한다.
예전의 부가서비스에서 내가 익숙했던 순서는 ‘필요하다 → 찾아간다’였다. 콘텐츠가 일상적인 동선에 먼저 놓이면 그 순서는 ‘마주친다 → 볼지 피할지 결정한다’로 바뀐다. 이용하지 않을 자유가 남아 있더라도, 보지 않을 자유까지 똑같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변화는 여기에 있다. 선택해서 들어간 상점에서 광고를 보는 일과 집 현관에 설치된 광고판을 매일 지나치는 일을 같은 선택으로 취급하고 싶지는 않다.
연락하러 온 사람의 주의
이 구조에서 회사가 얻으려는 자원은 사용자의 주의다.
허버트 사이먼은 1971년 정보가 풍부해질수록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주의가 부족해진다고 설명했다. 정보가 늘어나는 속도만큼 사람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는가 못지않게, 누가 그것을 봐줄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사이먼의 글
메신저는 사람들이 자주 방문하는 서비스지만, 방문할 때마다 오래 머물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메시지를 확인하고 답장을 보내면 할 일이 끝난다. 사용자에게는 효율적인 이용이고, 체류시간을 늘리려는 사업의 관점에서는 더 붙잡을 여지가 남은 이용이다.
피드와 숏폼은 그 시간을 늘릴 수 있다. 확인할 메시지가 없어도 볼 것이 있고, 하나를 다 보면 다음 것이 이어진다. 카카오는 이미 거대한 이용 기반을 갖고 있어 이 기능을 알리기 위해 새로운 앱의 설치부터 설득할 필요도 없다. 카카오가 공개한 2024년 말 국내 카카오톡 월간 활성 이용자는 약 4,895만 명이었다. 카카오 ESG 보고서
콘텐츠와 광고를 통해 수익을 내는 방식은 여러 플랫폼이 사용한다. 내가 카카오톡에 더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고 싶은 이유는, 그 이용자들이 모두 콘텐츠를 소비하려고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는 데 있다.
가족과 연락하기 위해, 학교나 학원의 소식을 받기 위해, 회사와 거래처의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콘텐츠 서비스라면 이용할 이유부터 설명해야 할 사람들을 카카오는 이미 메신저 이용자로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 차이는 어린아이와 노년층을 생각하면 더 선명해진다.
아이가 메신저를 허락받은 이유
부모가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마련해줄 때는 연락이 중요한 이유가 된다. 학교나 학원이 끝났는지, 집에는 언제 들어오는지, 급한 일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영상이나 SNS 이용은 제한하면서도 메신저는 허용할 수 있다.
그렇게 설치된 카카오톡에서 아이가 하려던 일은 “학원 끝났어”라는 메시지 하나를 보내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연락을 허용했다는 사실을 콘텐츠 소비까지 허용했다는 뜻으로 넓혀 읽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콘텐츠 플랫폼을 따로 설치하지 않았다면 부모는 적어도 그 서비스의 이용 여부를 앱 단위로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연락에 필요한 앱 안에 피드와 숏폼이 함께 들어오면 구분이 어려워진다. 메신저는 계속 쓰게 하면서 특정 콘텐츠 기능만 분리할 수 있는지, 그 설정을 아이가 쉽게 바꿀 수 있는지까지 확인해야 한다. 기능을 추가한 쪽은 플랫폼인데 관리해야 할 일은 가정에 늘어난다.
미국소아과학회는 2026년 보고서에서 자동재생과 무한 스크롤, 개인화 추천 같은 설계가 이용시간을 늘리고 기기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이 발달하는 과정에 있는 어린이에게는 이런 설계를 중요하게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AAP 기술보고서
그렇다고 이 보고서가 카카오톡의 특정 기능이나 모든 이용 연령의 실제 노출을 검증한 것은 아니다. 카카오톡에 대한 판단에는 연령별 접근 제한과 보호 설정을 따로 확인해야 한다. 다만 메신저와 콘텐츠를 충분히 분리하기 어렵다면, 부모가 아이의 발달 단계에 맞춰 정해놓은 이용 범위를 플랫폼의 설계가 흔들 수 있다는 문제는 남는다.
나는 이 대목에서 카카오의 사업적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내부에서 어린 이용자를 어떤 말로 논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연락 때문에 설치된 앱에서 다른 서비스를 시작하게 만드는 것이 사업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새로운 서비스는 사람들에게 존재를 알리고, 설치와 가입을 설득하고, 다시 방문할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고객 한 명을 확보하는 데 드는 비용을 고객획득비용, CAC라고 부른다. 카카오톡에 이미 가입한 사람에게 콘텐츠를 보여줄 수 있다면 그 과정의 일부를 줄일 수 있다. 물론 메신저 가입자가 곧바로 콘텐츠 이용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관계가 없는 사람을 데려오는 것과는 출발점이 다르다.
어린 시절의 사용 습관이 오래 유지되고 실제 수익으로 이어진다면 장기적인 고객 가치도 커질 수 있다. 기업이 말하는 고객생애가치, LTV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이점이다. 어린 이용자라는 이유만으로 가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어도, 일찍부터 여러 기능을 익히게 할 사업적 유인은 생긴다.
친구에게 연락하고, 피드를 보고, 짧은 영상을 넘기고, 상품을 구경하는 일이 같은 앱에서 이어진다면 아이에게 카카오톡은 처음부터 그 모든 것을 하는 공간이 된다. 메신저에 익숙해지는 과정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습관도 함께 배울 수 있다. 나는 이 효과가 회사의 서비스 확장 방향과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노년층에게는 설치의 문턱이 없다
노년층에서는 다른 이점이 생긴다. 카카오톡으로 가족과 연락하지만 별도의 SNS나 숏폼 앱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을 생각해보면 된다.
새로운 플랫폼이 이 사람을 이용자로 만들려면 앱을 알리고 설치를 도와야 한다. 계정을 만들고 사용법을 익힌 뒤에도 다시 찾아올 이유가 필요하다. 카카오는 이미 익숙한 앱 안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보여줄 수 있으니, 그 과정을 처음부터 밟지 않아도 된다.
이를 노년층이 콘텐츠를 즐기면 안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고 즐겁게 이용할 수도 있다. 다만 연락을 위해 익힌 서비스에 다른 기능이 들어왔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 기능까지 이용하기로 선택했다고 볼 수는 없다.
어린 이용자에게는 앞으로 형성될 습관이 사업적 기회가 될 수 있고, 별도의 콘텐츠 앱을 쓰지 않던 노년층에게는 아직 확보하지 못한 주의와 이용시간이 기회가 될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출발점은 연락이었다.
바로 이 점에서 나는 이런 확장이 비겁하게 느껴진다. 콘텐츠 자체의 매력으로 선택받기 전에, 사람들이 유지해야 하는 연락망을 이용해 먼저 노출할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더 많은 콘텐츠보다 관계의 구분이 필요했다
나는 카카오톡이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가 다른 곳에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너무 많은 관계가 하나의 계정에 들어와 있다는 문제다.
카카오톡에는 부모와 친구, 직장 상사와 거래처, 학교 관계자와 오래전에 번호를 주고받은 사람이 함께 있다. 현실에서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만날 사람들이 온라인에서는 같은 프로필을 본다.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여행 사진을 올리면서 상사의 시선까지 생각해야 하고, 상태 메시지 하나를 바꾸면서 가족과 동료가 어떻게 읽을지 함께 고려하게 된다.
앨리스 마윅과 다나 보이드는 서로 다른 청중이 하나의 공간에 겹쳐지는 문제를 ‘맥락 붕괴’라는 개념으로 다뤘다.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분명했던 상황들이 합쳐지면,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야 할지도 어려워진다. 마윅·보이드의 연구
이 관점에서 보면 다른 SNS의 계정이나 DM은 연락 수단을 하나 더 갖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전화번호로 이어진 관계와 조금 떨어져, 누구와 어떤 모습으로 연결될지 다시 정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물론 그곳에서도 관계가 뒤섞일 수 있지만, 적어도 별도의 계정에서 시작할 여지는 있다.
젊은 이용자가 다른 메신저나 SNS를 찾는 이유를 모두 이것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볼거리가 부족해서 떠났다고 가정하기 전에,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까지 너무 많이 연결돼 있어서 다른 공간을 찾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과 가정처럼 서로 다른 역할 사이의 경계를 다룬 애슈포스·크라이너·퓨게이트의 연구도 이 문제를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역할을 통합하면 오가기는 쉬워지지만, 그만큼 서로의 영역이 섞이는 것을 관리해야 한다. 모든 관계를 한곳에 모으는 편리함에는 경계를 지키는 수고가 따라온다. 역할 경계에 관한 연구
카카오톡은 그 수고를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도 있었다. 업무 관계를 별도 공간에 남기고 개인 계정은 사적인 연락에 집중하게 하거나, 전화번호 기반의 관계와 분리된 피드용 ID와 프로필을 제공하는 식이다. 가족끼리 사진과 일정, 중요한 연락을 공유하면서 다른 관계에는 드러내지 않는 공간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구분은 이름만 나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업무 공간에서 개인 프로필로 쉽게 넘어올 수 있거나, 새 피드 계정을 기존 연락처에 자동으로 알린다면 사용자가 원한 경계는 다시 무너진다. 누구에게 보이는지, 무엇이 서로 연결되는지를 사용자가 이해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콘텐츠를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연락 기능만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선택도 필요하다. 피드와 숏폼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설정 때문에 연락이 불편해져서는 안 된다. 아이의 경우라면 보호자가 연락 기능과 콘텐츠 이용 범위를 구분해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대안들이 겨냥하는 것은 사용자가 이미 가진 관계를 더 잘 다루도록 돕는 일이다. 카카오톡에 관계가 많다는 사실을 새로운 사업의 입구로만 보지 않고, 그 관계들 사이에서 사용자가 겪는 불편을 해결하는 것이다.
다른 공간으로 떠나는 이유가 관계의 부담에 있다면, 그 공간의 인기 기능만 가져와서는 충분하지 않다. 친구와 가볍게 소식을 나누고 싶어서 옮겨간 사람에게 가족과 회사가 함께 보는 피드를 제공하는 것은 같은 경험을 돌려주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떠나기 어려운 서비스가 져야 할 책임
불편하면 다른 앱을 쓰면 된다는 말도 카카오톡에서는 간단하지 않다. 서비스를 바꾸는 데에는 돈뿐 아니라 학습과 이동의 수고가 들고, 이런 전환비용은 기존 서비스에 이용자를 묶어둘 수 있다.
카카오톡에서는 관계망도 함께 작용한다. 내가 다른 메신저를 골라도 대화할 사람들이 그곳에 없으면 목적을 이룰 수 없다. 가족에게 새 앱을 설치하도록 부탁하고, 회사와 거래처의 연락 방식까지 바꾸는 일은 개인의 선택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이 카카오톡을 계속 쓰는 동안에는 나도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생긴다.
콘텐츠를 주로 보던 앱을 지우는 것과 주요 연락 통로를 없애는 일은 부담이 다르다. 카카오톡을 계속 사용한다는 사실만으로 사용자가 모든 변화에 만족하거나 동의한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불만을 느끼면서도 연락을 놓칠 수 없어 남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 하버마스의 ‘생활세계의 식민화’라는 개념이 떠오른다. 가족과 친구 사이에서 의미를 나누고 관계를 유지하는 일상의 영역에 돈과 권력으로 움직이는 체계의 논리가 침투하는 문제다. 이것을 카카오톡에 적용하는 것은 나의 해석이지만, 연락 공간의 변화가 왜 불편한지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
부모에게 귀가 시간을 알리고, 친구의 안부를 묻고, 할머니에게 손주 사진을 보내는 대화가 있다. 그 대화를 나누기 위해 방문하는 공간이 광고와 쇼핑, 피드와 숏폼을 더 많이 소비하도록 설계된다면, 관계를 유지하는 행동이 사업적 소비를 유도하는 기회로 이용되는 셈이다.
민간 서비스에 수익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이해한다. 카카오가 제공한 편리함도 부정할 생각이 없다. 다만 연락에 대한 동의가 콘텐츠 소비에 대한 동의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사용자가 찾아가는 부가서비스와 사용자의 연락 동선에 먼저 놓이는 콘텐츠 사이에는 지켜야 할 구분이 있다.
내가 카카오톡에 바라는 발전은 그 구분을 더 분명하게 해주는 것이다. 연락만 하고 싶은 사람은 연락하고 나갈 수 있고, 콘텐츠를 원하는 사람은 선택해서 들어가며, 서로 다른 관계를 어디까지 연결할지도 스스로 정할 수 있어야 한다.
카카오톡이 국민 메신저가 된 것은 큰 성취다. 나는 오히려 그 성취 때문에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하게 된다. 많은 사람이 떠나기 어려운 서비스가 되었다면, 사용자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은 노출에 대한 허락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국민이 떠나기 어렵다는 사실은 더 많이 침범할 권리보다, 더 적게 침범해야 할 책임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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