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담원에게 도달하기까지 빼앗기는 시간
나는 고객센터에 전화할 때마다 불편함을 넘어선 불쾌감을 느낀다. 상담사를 통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일로 전화했는데, 정작 상담사에게 도착하기까지 무의미한 자동응답에 붙들려 꼼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번호별 안내를 끝까지 들어도 상담원 연결은 나오지 않는다. 내 용건과 가까워 보이는 번호를 누르면 예상했던 일반적인 안내가 다시 흘러나온다. 여기서라도 0번으로 상담원을 연결해주면 다행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물정자와 별표를 누르며 메뉴 사이를 표류한다. 돌아가고, 다시 듣고, 다른 번호를 눌러보다 겨우 상담원 연결을 발견한다.
그런데 여기부터가 본격적인 대기의 시작이다. 상담원이 모두 통화 중이라는 안내와 함께 전화가 끊기는 일을 여러 번 겪었다. 대기를 받아놓고도 어느 순간 통화량이 많다는 이유로 연결을 종료하는 경우가 있다. 다시 전화하면 방금 통과한 절차를 처음부터 밟아야 한다.
그동안 다른 일에 집중하기도 어렵다. 다음 안내를 놓치거나 어렵게 잡은 연결 기회를 잃을까 봐 계속 신경을 쓰게 된다. 나는 이것이 기업의 운영 비용을 소비자의 시간으로 떠넘기는 부조리라고 생각한다. 문제 처리는 진행되지 않는데 내 일을 할 수도 없는 시간, 즉 ‘죽은 시간’이다. 우리는 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이런 부조리를 견뎌야 할까.

담당자를 찾는 일까지 고객의 몫
택배가 분실됐다고 가정해보자.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연락했는데 자동응답은 배송 조회 방법을 알려준다. 조회 화면으로 사라진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면 고객센터에 전화할 필요도 없다.
ARS 메뉴 사이에서 상담원 연결을 찾아내고 긴 대기를 견딘 끝에 통화가 됐다고 하자. 그런데 상담은 내 택배를 담당하는 지역 사업소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것으로 끝난다. 연결까지 9분, 안내에 1분이 걸렸다면 고객은 다른 번호 하나를 받기 위해 10분을 쓴 셈이다. 이제 그 번호로 다시 전화해야 한다. 그곳마저 연결되지 않으면 언제 받을지 모르는 전화를 계속 걸어야 한다.
앞의 9분은 누구에게 필요한 시간이었을까. 분실된 물건을 확인하는 데 쓴 시간도, 사고를 접수하는 데 쓴 시간도 아니다. 고객이 담당자를 찾아가는 데 부담한 시간이다. 회사 안에서 담당자를 확인하고 연결할 일을 고객이 대신하고 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고객을 돕기보다 지쳐서 떨어져 나가게 하려는 설계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문의 창구는 열어두되, 실제로 도움을 받으려면 여러 관문을 통과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끝까지 버티지 못한 고객의 전화는 줄어들겠지만, 그 사람의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남는다. 기업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이런 절차는 도움이 필요한 고객을 중도에 포기하게 만든다.

화면과 챗봇에서도 끝나지 않는 안내
보이는 ARS라고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문자로 받은 링크에 들어가 화면을 따라가다가 막혔는데 상담원에게 연결할 방법이 없다면, 다시 전화를 걸어야 한다. 음성 안내에서 길을 찾던 일을 화면 안에서 하게 됐을 뿐이다.
30대인 나도 어렵게 느끼는 과정이다. 스마트폰 사용이나 복잡한 메뉴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이와 고령자에게는 얼마나 더 버거울까. 필요한 메뉴를 이해하고 여러 번 시도할 수 있는 사람만 상담사에게 도달한다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고객센터라고 할 수 있을까.
챗봇도 마찬가지다. 질문을 고르면 답변이 나오고, 답변에는 다른 페이지나 문의 창구가 안내된다. 그럴듯한 문장을 따라 한참 이동했는데 마지막에는 문의 게시판에 글을 남기고 답변을 기다리라고 한다. 그럴 거라면 처음부터 그곳에 접수하도록 안내하면 될 일이다.
분실이나 파손 때문에 연락한 고객은 사고를 접수하고 처리할 사람을 찾고 있다. 챗봇이 일반적인 가이드를 보여주는 데 그친다면, 고객은 그 기능의 한계를 직접 확인하는 데 시간을 쓰게 된다. ARS의 자동응답을 글로 바꿨다고 문제 해결 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비용 절감 뒤에 남는 상담사의 부담
불만을 접수하고 사후 문제를 처리하는 인바운드 상담은 새로운 계약을 맺는 영업처럼 매출이 바로 드러나는 업무가 아니다. 기업이 이를 줄여야 할 비용으로만 본다면, 고객을 얼마나 도왔는지보다 상담사에게 들어오는 전화를 얼마나 줄였는지가 중요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고객센터를 없애기도 어렵다. 문제가 생겼을 때 연락할 곳조차 없다면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다. 내가 불쾌하게 느끼는 것은 그 사이의 태도다. 연락할 곳이 있다는 명분은 갖췄지만, 고객이 그곳에 도달하기까지 겪는 피로는 방치한다.
기업의 상담 인력 운영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의는 하루 내내 일정하게 들어오지 않는다. 몰리는 시간과 상대적으로 한산한 시간이 있는데, 가장 바쁜 순간에 맞춰 인력을 채용하고 계속 유지하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그 부담을 줄이려고 고객에게 절차를 더 거치게 하면, 상담사는 그 과정에서 쌓인 불만까지 받아내야 한다. 겨우 연결된 고객은 원래 문제뿐 아니라 연결되기까지 겪은 불편에도 화가 나 있다. 상담사는 자신이 설계하지 않은 ARS에 대한 항의부터 들으면서도 회사의 얼굴로서 친절해야 한다.
상담 노동의 고충은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의뢰한 2021년 콜센터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고객의 폭언을 겪는 횟수는 월평균 12회에 달했다.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한다는 응답은 25.3%, 낮은 임금 때문에 이직을 고려한다는 응답은 40.5%였다. 이미 응대와 노동조건의 부담이 큰 사람들에게 연결 절차에 대한 불만까지 더해지는 셈이다. 경향신문의 실태조사 보도
상담사에게 폭언할 책임은 폭언한 고객에게 있다. 그렇다고 기업이 불필요한 마찰을 만드는 절차를 그대로 두고, 그 뒤처리를 상담사의 친절에 맡겨도 되는 것은 아니다. 고객은 시간을 잃고, 상담사는 더 거칠어진 응대를 감당하며, 기업은 고객의 신뢰를 잃는다. 당장의 상담 비용만으로는 이 손실을 계산할 수 없다.

첫 안내부터 선택할 수 있어야 할 상담원 연결
나는 고객이 연락한 이유를 처리하지 못하면서도 반드시 거치게 하는 부조리한 절차를 없애고 싶다. ARS 안내로 끝낼 수 있는 일은 남겨두되, 상담이 필요한 사람에게까지 그 과정을 강제하지 말자는 것이다.
상담원 연결은 첫 안내에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배송 조회나 반품 접수를 자동으로 끝낼 수 있는 사람은 해당 기능을 이용하고, 설명이나 조치가 필요한 사람은 상담을 선택하면 된다. 어느 메뉴에 해당하는지 모르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용건을 직접 설명할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
처리에 기여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단계는 줄이거나 없애야 한다. 소수에게 필요한 도움이라면 별도 메뉴를 늘리기보다 상담사가 직접 안내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챗봇에서도 접수나 상담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사고를 접수할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접수를 끝내고, 처리할 수 없다면 상담원 연결이나 연락 요청을 선택하게 해야 한다. 다른 창구를 찾아 같은 일을 다시 하라는 안내로 역할을 끝낸다면 고객의 수고는 줄지 않는다.

대기 시간 안내와 회신 요청으로 돌려줄 선택권
상담원이 모두 통화 중일 수 있다. 모든 전화를 즉시 받으라는 요구는 아니다. 연결이 어려울 때 고객에게 상황을 알리고, 자기 시간을 어떻게 쓸지 선택하게 하자는 것이다.
- 예상 대기 시간을 안내해야 한다.
고객이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른 채 통화를 유지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예상 시간이 있어야 지금 기다릴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 비교적 덜 붐비는 시간대를 알려줘야 한다.
실제 상담 기록을 바탕으로 연결이 수월한 시간대를 안내하면, 고객도 자신의 일정에 맞춰 연락할 수 있다. - 계속 기다릴지, 다른 시간에 연락할지 선택하게 해야 한다.
대기와 재연락에는 각각 고객의 사정이 있다. 기업이 일방적으로 통화를 종료하기보다 고객이 선택할 기회를 줘야 한다. - 회신을 요청하고 전화를 끊을 수 있어야 한다.
정확히 몇 시에 연락하겠다는 약속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지키기 어려운 시각을 확정하기보다는 연락 요청을 접수하고 회사가 후속 연락을 맡으면 된다. 고객이 다시 전화하지 않아도 요청은 유지돼야 한다. 재전화는 추가 선택이지, 상담을 받기 위해 반복해야 하는 의무가 아니다.
기업이 비용을 소비자에게 떠넘긴다는 표현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고객이 담당자를 찾아 메뉴를 헤매고 같은 절차를 반복하며 시간을 쓰는 일은 실제로 벌어진다. 그 시간은 무료가 아니다. 고객이 자기 일에 쓸 수 있었던 시간이며, 그 과정에서 쌓인 불만은 전화를 받은 상담사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고객센터는 비용을 줄이고 남은 범위에서 베푸는 호의여서는 안 된다.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이 문제를 알리고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은 기업이 제공해야 할 기본 서비스다. 고객의 접근과 상담사의 보호를 먼저 보장하고, 그 안에서 효율을 찾아야 한다.
고객의 시간을 빼앗고 상담사의 감정노동을 늘려 줄인 비용을, 기업은 효율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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